德仁 郭鍾敏 (`붓`에 담겨진 명장의 예술혼) 글- 홍경한(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미술평론가
우리나라 몇 안 되는 붓 명인(名人)이자 예술가(藝術家) 중 한 사람인 곽종민. '장인(匠人)은 태어나고 예술(藝術)은 다듬어진다;는 말처럼 그 역시 그러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전통성은 그 자치를 달리하고 인식(認識)과 지원이 척박하기 그지없는 토양(土壤)에서 전통(傳統)필(붓:筆) 만들기를 고집하며 지켜온 자존심의 한극(恨極)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터임에도 그는 한번도 푸념어린 넋두리 없이 지금까지 오로지 필의 완성을 향해 묵묵히 걸어온, 우리나라 회화사와 은영중(隱然中) 함께해온 인물이다.
그가 붓을 만드는 전통 예인(藝人)으로서의 길에 들어선 것은 부친의 영향이 컸다. 그야말로 어려서부터 늘 보아왔으며 볼 수밖에 없었던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 놓여 숙지(熟知)되어 왔다는 것이 맞다. 그러던 것이 뒤돌아보니 어느새 30여년이라는 세월의 나이테가 켜켜이 쌓여 왔다. 전승성(傳承性)이 갖는 후렴(後斂)이야 물어 무엇 하겠는가 싶어 거론키가 낯부끄럽지만 많은 화자(畵者)들이 그 중요성을 알고 습득(習得)하며 활용할지언정 그것의 이어감에는 깊은 통찰(洞察)을 하지 않았을 터이니 세속적(世俗的)으로 커다란 영광을 누리기엔 너무도 야박스러운 여로(旅路)였을 것임은 짐작이 간다. 따라서 이번 전시를 통해서 오늘날 그의 예술과 명인으로서의 업적(業積)을 되새겨봄은 늦은 감이 있지만 어쩌면 다행이랄 수 있다.
곽종민은 붓을 만드는 데 쓰는 모(毛)를 찾기 위해 전국(全國)산천(山川)을 누빈다. 대단한 심기가 아닐 수 없다. 해남이나 섬, 오지 산간지방을 돌며 좋은 털을 구하기 위한 그의 집념은 예사롭지가 않다. 힘들지 않느냐고 혹자들이 묻곤 하지만 좋은 붓을 만들려는 욕심에 고달픈 발품이 아깝지 않다는 게 그의 변이다. 부드러운 짐승의 털로 만들어야 화자의 예민(銳敏)한 감정을 화선지에 전달하는데 가장 효과적(效果的)이라는 것을 믿기도 하거니와 우리 것, 우리의 정신이 담긴 것이야 말로 진정하다는 생각이 고집스럽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좋은 모를 고르고 수분과 기름기의 완급(緩急)조절을 위해 담금질하기를 여러번, 그 이후 건조과정을 거쳐 모양을 내고 억세고 강한 것을 심으로, 부드러운 털로 겉을 입히는 과정을 지나 붓의 힘을 더하거나 빼야하는 등 붓 만드는 작업이 워낙 정교하고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보니 전통을 잇는다는 사명감(使命感)이 없니는 하루도 이어가기 어려움은 자명하다. 이는 현시점에서 곽종민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이유가 된다.
붓의 좋고 나쁨은 털의 우열도 그렇지만 그것을 다루는 필장(筆匠)의 기술에 있다 해도 넘치는 표현은 아니지 않나 싶다. 좋은 모를 골랐다한들 그것을 다듬는 자의 혼이 깃들지 않으면 쓰임새를 발휘하기가 어려우며 그 혼의 자유로움은 필장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장의 경지란 하루 이틀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곽종민과 같은 예장들은 흔치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그가 만든 붓을 한번 써 본 대가(大家)들은 그 우수성에 매료(魅了)되어 그의 붓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가 만들어 내는 붓은 하나하나가 예술이며 훌륭한 창의력이 깃들어 있는 작품(作品)들이다. 장인으로서의 입지도 작지 않으나 그를 반드시 기술성에 국한되어 보이는 장인이라든가 전승공예(傳承工藝)의 테두리에 묶어두는 듯한 뉘앙스(nuance)는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이에 필자는 그를 두고 포괄적(包括的) 개념으로서의 예술가, 예인의 관점에서 바라봐줘야함이 옳지 않나 싶다.
자신의 일을 천직(天職)이라 여기는 삶의 과묵함과 언제 매듭지어질지는 몰라도 전통(傳統)을 이어가기 위한 소명감, 질끈 동여맨 머리카락 넘어 넉넉한 웃음과 투박한 손끝에서 발아하는 그의 예술성은 우리 붓의 2000년 역사를 함축(含蓄)하려 한다는 점에서 동시대(同時代)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